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2010년,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사다난했던 2009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룻 밤을 지내고 나면, 새로운 한 해 2010년이 시작되네요.

매 년 새로운 해에 들어서고도 며칠 동안은 습관적으로 작년을 나타내는 숫자로 적기를 반복합니다.
'아니지, 해가 바뀌었지, 지난 날이 되어버렸지'라고 인식하는데, 그 만큼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불과 하루 전, 며칠 전, 몇 달 전의 일들을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날들로 묻어두는게 못내 아쉬운 것이겠지요.

벗님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을 치르는 동안, 한 명의 정치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탄생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가장 큰 기적이었다'라고 밝힐 만큼, 그는 우리 나라의 정치 지형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였고, 정치인스럽지 않은 정치인이라서 더욱 그에게 매료되었었는지 모릅니다.

주먹구구라 일컬어지던 그 동안의 국가 운영에 '시스템'을 도입하며, 투명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도입했습니다.
그가 퇴임을 한 후, 우리나라에 마련해 놓은 어떤 행정부의 시스템이 해외에서도 '선도적'이라며 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틀을 마련하는 것,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것들은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러한 것들은 '대한민국'에도 만드려 놓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저 구색으로 올려놓은 노트북이 아니었습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국가의 체질을 선진국과 같은 개방적이고 투명적인 환경으로 바꾸어야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립과 반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변화된다는 것은 기득권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바른 방향을 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외하고 바라본다면, '말이 많고 탈이 많다'로 비춰집니다.

이 정치인은 참 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해야할 일들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100분 토론에 가장 많이 출연했던 정치인이며, 국민들과 함께 해야할 일들이 많았었는지 나누고 싶은 말도 참 많았던 정치인입니다.

퇴임을 하고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 푸근한 미소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그를 보는 것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세상이 고단하고, 말 같지도 않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의 소식을 듣는 것은 이런 일상을 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야, 기분 좋다'를 외치며 즐거워하던 그를,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악수라고 청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양보하는 그를, 벗님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그를 잃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속보에 눈을 땔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비정한 세상이 되어버렸구나'라며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큰 스승을 잃음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들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벗님도 역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또 바쁘면 생각하지도 못하고 지냅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 2009년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삶, 그 분의 푸근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대한민국민주주의를 붙잡아놓을 것입니다.
항상 벗님이 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장 쉬운 일이지만, 가장 큰 권력'인 '투표권'을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이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벗님의 작은 다락방'을 방문해주시는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시죠?
고운 하루 되세요. ^_^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2009년, 잊지 말아야 할 현실 인식

2009년 한 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잔인한 통치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잔인'(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 즉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는 상태'로 다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답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통치' 하에 놓인 국민들이 겪게 되는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자행되는 이 강압 통치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작은 상자 속으로 육신을 구겨넣고 있습니다.
'밖으로 고개를 향한다거나, 끽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해야 합니다.
'잔인한 통치자'에게 무슨 '사람다움, 인간적인 처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쓸 뿐이다.

'잔인한 통치'는 사회를 점점 '잔인하고 몰인정한 상태'로 이끌어갑니다. 책임자는 없으며,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통치자는 당연히 책임을 지지 않으며, 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도 책임이라는 짐을 내려놓게 만듭니다.
누구도 '잔인하게 변해가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저, '잔인한 사회'에 익숙해질 뿐입니다.

촛불이 그러했고, 용산이 그러했고, 쌍용자동차가 그러했습니다. 수 없이 많은 국민들이 이 '잔인한 사회'에
억울하게 폭력을 당하고 쓰러지고, 목숨을 위협당했지만, 누구 하나 이에 '책임'을 지는 이는 없습니다.


한 번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으며, 점점 심각해지는 잔인한 통치는 사회는 점점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내 년, 내 후 년을 전망해보면 우울하긴 하지만, 더욱 심각해지는 '잔인한 통치'를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잔인한 통치'가 충분히 잘 먹히고 있으며, 이러한 통치를 '잘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현재도 많으니,
여전히 유효하고 효과적인 통치 방식인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형태대로, 국가는 그 모습을 유지합니다.

요즘 '이란의 대통령 선거 이후 발생되고 있는 대규모 시위와 실탄을 발포하는 공권력'의 모습들이 남 같지 않습니다.
자국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이런 '잔인한 통치'도 역시 그 국가 안에서는 '합법'이고, 꼭 필요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불법 시위, 불법 파업, 불법, 불법..'을 '엄단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우리네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경호원 없이는 어디도 향하지 못하는 '잔인한 통치자'는 '국민들만은 잔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
아마 그 통치자는 이런 말을 내뱉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잔인한 것은 합법'이지만, '네가 잔인한 것은 불법'이 되는 법이다.
너는 '선량한 국민'이 되어라. 숨이 턱턱 막히더라도 '작은 상자' 안으로 어떻게든 몸을 구겨 넣어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사람들은 착하고 선한 민족'이 아닌가.

* 이 글이 몹시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또 앞으로의 현실입니다.
* 꼭 꼭 잊지 말고, 당신이 행 할 수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변화, 투표를 잊지 맙시다.




[그림일기] 2학년 4월 24일

국민학교 2학년 벗님의 그림일기 - 4월 24일(화)


나의 꿈은 과학자가 아니고, 우리 형이 과학자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부연 설명>

작품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치혈한 공중전에서 왼쪽 날개에 커다란 손상을 입고 추락 중인 우리 편의 비행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엄청난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전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 편의 최후의 보루, '로보트 태권브이' 혹은 '마징가Z'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뒤이어 이어질 모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가 인정하듯이, 전세는 곧바로 역전되고 우리 편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선동열이 그라운드에 올라오면 '승패가 바로 결정나버리는 것'과 비슷한 형국입니다. 승리의 이름이지요.

이 그림일기에 쓰여 있는 것처럼, 작은 형님의 꿈은 '과학자'입니다. 여느 과학자가 아니라, '로보트 태권브이'를 만드는 과학자입니다.

언젠가는 차고에서 '로보트 태권브이'가 탄생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형님이 '로보트 태권브이'의 손목 하나 정도만 만들어내도, 린다 해밀턴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지내고 있는 터미네이터를 이끌고
국내에 몰래 잠입하여 작은 형님이 '로보트 태권브이'를 탄생시키는 걸 방해하려고 할텐데 이것이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린다 해밀턴터미네이터를 따돌릴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요?




경건한 지성, 하루 하루 읽어가는 짧은 이야기

'좋은 생각'에 흠뻑 빠져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제목 만큼이나 참 '좋은 생각'들이 들게 만드는 참 아름다운 책입니다.

몇 번인가 저의 짧은 글들을 좋은 생각에 보냈었고, 두 번 정도는 짧게 소개되어 지면에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님에게 '좋은생각'이라는 글씨가 담겨있는 기념 손목 시계를 받아서 선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주 작은 선물이었지만, 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 것 같아 기분도 좋고, 은근히 어머님에게 '우리 아들이 이 정도다'라며
귀엽게 으시댈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글이 선정되지 않아도 글을 보내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다음 달 좋은 생각'을 보내주었습니다.

출퇴근을 하며 하루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를 읽고 잠시 숨을 돌리듯 마음 따뜻한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한 페이지, 하루 두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에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도록 편집해놓은 책은 여러모로 호감이 갑니다.
깊이 있는 사고에 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폭 넓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경건한 지성'도 이 '좋은 생각'처럼 날마다 짧은 이야기들로 즐거움을 주는 서적입니다.

'경건한 지성'은 요일별로 '역사, 문학, 미술, 과학, 음악, 철학, 종교'로 구분된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은 초반이라서 그런지 가장 기초되는 부분부터 다루기 시작합니다. 마치 짧은 교양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가십거리처럼 꺼낼 수 있는 이런 가벼운 소재들의 글들을 좋아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눈꼽만큼 더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로의 견해를 들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아는 것은 손바닥 만한 것이겠지만,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커다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두툼한 이 '경건한 지성'은 일 년 365일을 꼬박 읽어야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습니다.
아라바안 나이트처럼 매일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며, 벗님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경건한 지성 - 8점
노아 D. 오펜하임 외 지음, 김규태 외 옮김/(주)하서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아이폰, 리퍼 받았습니다.

'소니 타이머'처럼, '아이폰 타이머'도 있는 것일까요. 아이폰을 구매하고 14일쨰 되는 저녁 아이폰의 백라이트가 죽어버렸습니다.


마의 14일을 넘기지 못하고 바로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결국 대리점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오늘 리퍼로 교체를 받았습니다.
추락 한 번 없었는데, 이렇게 기기불량이 일으킨 것은 못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이폰도 '뽑기운'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리퍼가 하나 남아있어서 바로 교체를 하고, 검은 색의 아이폰에서 흰 색의 아이폰으로 취향을 바꾸어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MBC 뉴스에서 '아이폰'의 A/S에 대해 '고장나면 끝장난다, 바꿔주지도 않는다'라는 듯이 방송한 것의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주위에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고, '괜시리 골치덩어리를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애플의 A/S가 악명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 국내의 A/S 정책과도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회용 제품'를 판매하는 것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작용되고 있는 '삼성의 영향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저런 힐난성 기사들에 넘어갈 정도이니 말입니다.

리퍼로 받은 아이폰에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들도 모두 동기화되었고, 아이튠즈에서 '앱'들도 거의 모두 동기화하였습니다.
기기만 바뀌었을 뿐이지, 기존의 사용하던 환경들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예전 휴대폰의 기기변경이야 '전화번호'들만 옮기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아이튠즈 하에서의 아이폰은 참 간편하고 편리한 조합입니다.

아이폰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쉽게 전화가 걸린다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게 너무 가벼워져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도 단점 아닌 단점입니다.
사실 아이폰은 '전화 기능이 포함된 손 안의 컴퓨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집에 있는 컴퓨터 대신 아이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삼성'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들여 '옴니아, 옴니아2'를 '아이폰'의 경쟁상대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이 경쟁에서 승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며 '편안하다'라는 느낌을 진하게 느끼게 되는데, 삼성의 '옴니아 시리즈'가 이 느낌을 압도할 수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얼마 되지 않긴 하지만, 제가 만져본 '터치스크린을 달고 있는 스마트폰' 중 아이폰을 넘어서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애플의 사용자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빠'가 되어버리는 것은, 그 만큼 '완성도가 높은 제품의 만족감'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폰을 만져보기 전에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라는 브랜드를 흠모했었고, '철저한 예술가 정신'의 '작품'에 대해 감탄을 했었지만,
아이폰을 만져보고 후에는 '왜 아이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아이폰 10일 사용기 ( http://daeil.textcube.com/1546 )
- 아이폰 만져보기 ( http://daeil.textcube.com/1541 )





희망뮤지컬 연탄길, 우리가 모두 희망입니다.

바이럴블로그에서 선정되어 작은 형님과 함께 '희망뮤지컬 연탄길'을 보고 왔습니다.

이 '연탄길'은 베스트셀러 작품인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연탄길'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의 아버님, 어머님이 살아가셨던 힘겨웠던 그 시절의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뮤지컬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지내던, 그 지난 나날들의 모습들이 정겹고 눈물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네 가지 에피소드로 진행된 이 '연탄길'에서 이웃의 정, 아버지의 정, 어머니의 정, 친구의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가득 손에 쥘 수 있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닌, 마음 따뜻하게 전해받을 수 있는 넘치는 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있는 내내 우리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떠올라 그저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길 수 만은 없었습니다.

어제는 눈이 한 가득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자동차도 사람들도 조심 조심 그렇게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따뜻한 온기를 내어주고 차갑게 식어버린 그 연탄이 우리네 이웃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어야 할 시간인가 봅니다.

펼쳐두기..



주위를 둘러보세요. 따뜻한 손길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차가운 손을 호호 불고 있는 우리네 이웃들을 생각해보세요.
아주 작은 내 스스로의 작은 도움들이 세상을 그 만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답니다.

관련 사이트 :
- 바이럴 블로그 ( http://www.viralblog.co.kr )
- 희망뮤지컬 연탄길 ( http://yeontangil.com )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무한도전, 그 분을 추모합니다.

근조를 연상시키는 흑과 백, 그리고 노란 빛깔이 화면에 가득 자리하고 있는 '무한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9년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방영되었습니다.
화려하기만 했던 무한도전의 자막들이 이 날은 거의 '흰색과 노란색'으로 정결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단어 하나 하나가 지난 날들, 혹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반추하는 듯 짧은 단어들로 나열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연상들에 대해 '해석하기 나름'일 뿐이며,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벗님의 눈에는 처연한 현실들이 그대로 비춰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진하게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해 전만해도 아래와 같은 '흔하디 흔한 속담' 정도는 어디서나 쓸 수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네요.
무한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금칙어'처럼 느껴지는게 현실입니다. 이탈리아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스턴닷컴에 실린 '올 해의 사진' 중 한 컷입니다. 평일, 서울의 한 복판, 참 슬픈 날이었답니다.
이날 아침에도 전의경들은 시민들과 작은 몸싸움을 일으키기도 했었지만, 광장 가득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정말, 푸근한 미소가 담긴 그 분2010년 신년사를 듣고 싶은데, 더 이상 이런 바람은 이루어지질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큰 어른 두 분을 잃어버리고,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무한도전이 등을 토닥여주는가 봅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무한도전 김태호PD를 응원합니다. ( http://daeil.textcube.com/1099 )
-  MBC를 섭렵해야 비로소 완성이겠지요. ( http://daeil.textcube.com/1451 )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어떤 분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챠트' 위지아(wisia)에 '대형사고하면 떠올려야 할 참사'라는 챠트가 하나 열렸습니다.

이 '위지아'는 일반적으로 아이템이 고정된 방식의 투표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다양한 아이템들을 추가하고,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자유로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 다양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챠트는 '대구 지하철참사'라는 안타까운 대형참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처음 만들어졌을지만,
현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를 쓰고 있는 현재, 무려 '63%'에 달하는 분들이 하나의
아이템에 몰표를 던지고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그 비율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아래가 해당하는 챠트입니다.


작 년, '파란'에서 '올 한 해 동안 가장 화제가 되었던 인물을 직접 뽑아주세요'라는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설문에서 한 가지 간과하고 넘어가선 안될 부분이 있는 바로, '네티즌들의 성향'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또 이런 설문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전체로 하는 설문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 상에서 감지되는 이들의 성향입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이라는게 대체적으로 젊은 분들이 많이 참여하셔서, 결론들은 대체로 '진보적'인게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꾸밈없이 말하고, 또한 자유스럽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결과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시작은 이랬었지만, 결과는..


하지만, 이런 '조금은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결과들이 '어떤 분들'에게는 영 불편하고 껄끄럽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결론을 '조작'해서라도 불편한 부분들을 제거하고, 조금 더 '덜 진보적'이고, 무미건조한 결과로 바꾸어버립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눈에 보이는 고쳐쓰기 ( http://daeil.textcube.com/964 )

안 봐도 선하지만, 연말이 되고 수 많은 언론에서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챠트'들을 내놓고 조명하게 되겠지만,
위와 같은 '고쳐쓰기'는 알게 모르게 참 많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땡전뉴스'가 '땡박뉴스'가 되어버린 현실이니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땡'하고 정시를 알리며 뉴스가 시작되면, 항상 '전'두환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일컬어 '땡전뉴스'라 합니다.
요즘은 '땡'하고 정시를 알리며 뉴스가 시작되면, 'xx박'이 뉴스에 나와서 '어떤 영도자'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요즘 세상 어떻게 돌아가나' 시선을 두려고 뉴스를 틀었다가도, '땡박뉴스'로 점칠된 현실을 보면, 마음이 참 찹찹해집니다.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에쿠우스, 무엇을 위해 희생을 하는가.

에쿠우스, 이 연극이 끝나고 난 후, 한 동안 멍하니 고개를 들고 조명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현대화, 근대화라는 허울 좋은 문명화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파괴되고 있는 원시림을 보는 것처럼,
마음 한 켠이 무거웠습니다. 결론적인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듯,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는 끝을 맺었는데
도무지 적절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정신과 의사도, 소년과 마찬가지로 모습을 달리 하고 있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앓고 있는 고질적인 정신질환들.
그 한 가운데로 몰아넣고는 관객이 판단을 내리라며, 공을 던집니다.

에쿠우스,
천 여 회가 넘는 공연횟수가 말해주듯, 우리나라의 연극배우라면 누구라고 서고 싶어할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벗님이 '에쿠우스' 공연을 보러간 날은 '조재현류덕환'이 배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각의 링처럼 꾸며진 무대, 동일한 사건을 배우와 관객들이 동일한 관점으로 바라보듯 극은 진행되었습니다.

희곡이라는 활자체로 된 형태로 접했을 때와, 눈 앞에 극으로 펼쳐진 모습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박제처럼 박혀있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튀어올라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희노애락을 들려주었습니다.

전반부가 끝나가는 그 시점, 귀를 울리는 장중한 음악과 처절하게 소리치는 소년을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고였습니다.
안타까움, 연민, 아련함, 알 수 없는 슬픔의 조각들이 고통을 안겨주 듯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에쿠우스, 소년의 신을 죽이고, 소년의 낙원을 없애야만 했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내내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표블로그, 더 넓게 시선으로

지난 번에 알려드린 것처럼, '벗님의 작은 다락방'은 '2009 대한민국 대표블로그 100'에 선정되었습니다.

벗님은 개인적으로는 '시사'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화/예술' 분야로 선정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술적 감각이 탁월하다던가, 어딘가에 내세울만큼 다독을 하고 있지도 않아서 부끄러운 건 사실입니다.
저보다 훨씬 역량이 뛰어난 분들이 많은데, 어쩌면 '대표성'을 띈 하나의 블로그로서 선정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랭크 안에 들어가는 것은 항상 즐겁습니다. 어떤 행동과 행위에 따른 보상이나 표창같은 한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겁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많은 분들과 서로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그 존재 이유를 두고 있었기에,
이렇게 어떤 랭크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게될 때면, 무슨 '보너스'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무엇보다 이번 '2009 대한민국 대표 블로그'에 선정된 것은 더 기분이 좋았는데, 여러 블로그 업체들이 다함께 모여
우리나라의 블로고스피어의 대표성을 띈 하나의 집합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벗님의 작은 다락방'이 이 안에 포함됐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참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노씨님와 in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번 '2009 대한민국 블로거'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들이 눈에 띄입니다.
바로 '설치형 블로거'들은 선정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블로고스피어 상에서 영향력도 상당하고,
열정적으로 운영하시는 분들인데, 이 프레임(블로그 업체에 가입한 블로그)에 속하지 않음으로 인해 거론도 되지 않으며,
또한 완전히 배제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참 아쉽게도 '그들만의 잔치'라는 핀잔을 듣기에 충분합니다.

다음 번 진행에서는 더욱 포괄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블로고스피어'를 아우를 수 있도록 폭 넓은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신인 블로그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소개될 수 있는 행사가 된다면 더욱 멋진 블로거들의 잔치가 될 것 같습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대한민국 대표블로그 100에 선정되었습니다. ( http://daeil.textcube.com/1537 )

관련 포스트 :
- 블로그 어워드 : 독립형 블로그 배제의 의미 ( http://www.minoci.net/1017 )
- 블로그 어워드에 부쳐 (1): 랭킹의 의미 ( http://inuit.co.kr/1839 )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PD수첩 제작진 실형, 암담합니다.

검찰이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실형'을 구형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금기사항'을 어겼음에 대한 '징벌'이라 생각됩니다.

무엇이 '금기사항'이었을까요? '언론'이란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시각으로 임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무역 협상'이 원칙도 지켜지지 않으며, 그 동안 작동하던 안전 장치들이 모두 해제되어버리는 걸
그저 눈 뜨고 바라보고만 있으라는 말이었을까요. '언론'이 아니라, '홍보처'의 역할을 원하고 있었을까요.

제작진 전원, '책임 프로듀서부터 작가까지' 모두 옥살이를 하라니, 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던 청소년들, 어른들, 아이들, 꼬마들까지
모두 옥살이를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라도 해야하는 것일까요. 감사의 눈물이라도 흘려야하는 것일까요.

참 암담합니다. 아침에 신해철의 어떤 노래를 듣다가 문득 목숨을 던져야만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었는데,
저녁 늦게 이 뉴스를 접하며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얼마나 바닥을 나둥굴어야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인지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2010년이 시작되는 이 시대에 이렇게 뒷걸음질도 모자라, 바닥에 넘어지고, 상처입으며 질질 끌려다녀야 한다는게 정말 한탄스럽습니다.
'넓게 보자, 멀리 보자'며 다독이고 다독여봐도 '이 현실'이 쉽게 잊혀지질 않습니다. 마치 '삼류 영화의 황당한 시츄에이션'같으니 말입니다.


관련 기사 :




아이폰 10일 사용기

아이폰(iPhone)을 사용한지 이제 10일이 되었습니다. 바로 아이튠즈에 가입(국내,미국)하고 앱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폰이 저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그 효용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 앱들을 깔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원칙이 몇 가지가 있는데, 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유료 앱 구매를 최소화하며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비싼 장난감'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활용성을 확장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현재 벗님의 아이폰에는 거의 10페이지 정도의 앱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심심풀이 삼아 동작시켜볼 수 있는 앱들도 많지만,
정말 실용적이며, 꼭 필요한 앱들이 두 페이지 정도를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괜찮은 앱들은 아이폰을 재밌는 물건으로 만듭니다.
어떤 앱들은 수 백 메가가 넘는 상대적으로 상당힌 큰 용량이지만, 아이폰에서는 가벼운 앱 아이콘으로 인해 가볍게 느껴집니다.
모든 앱들이 모두 동일한 크기의 아이콘에 담겨 있어서 주머니 안에 유리 구슬을 만지는 것처럼 편안하고 쉽게 다가옵니다.

아이폰의 '앱'들은 마치 예전의 '코원 D2의 엄청난 펌웨어'를 통해 느꼈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기기'를 접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벗님이 구매한 단 하나의 유료 앱 'Sleep Cycle alarm clock'입니다.


이 'Sleep Cycle alarm clock'은 '수면의 패턴'을 분석하게 가장 편안하게 잠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입니다.
이 앱은 꼭 '매트리스'에서 수면을 취하는 분들만 이용하셔야 합니다. 수면을 취하는 사람이 뒤척이는 정도를 매트리스의
작은 흔들림으로 감지하며 이 앱이 동작되기 때문입니다. 기상 시간을 설정하고, 머리 맡의 매트리스에 놓으면 됩니다.

우리들이 흔히 깊은 숙면 상태에서는 잠을 깨기가 힘들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앱은 그런 시간대를
피해 아주 작고 잔잔한 알람 소리로 잠을 깨워줍니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잘 들리고, 편안하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텔레비젼의 볼륨이 아니라, 머리맡에 들릴 듯 말 듯 들리는 알람을 들으며 쉽게 일어나게 되는 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앱에 6시 20분으로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6시 즈음이 되어 알람이 울리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가장 편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시간대였던 모양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0.99달러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아이폰의 하나의 '디바이스'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단순한 전화기, 재미있는 장난감, 비즈니스 북,
건강 매니저, 네이게이션처럼 무궁무진하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합니다. 십만 개가 넘는 앱들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활용성으로 '아이폰이라는 디바이스'를 '정말 대단한 물건'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아이폰 만져보기 ( http://daeil.textcube.com/1541 )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우리는 순한 양일까요?

'불법'이라고 모두 그렇게 말했고, 이미 노조원들을 쫒아냈지만, '무엇이 불법이었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고,
정부 정책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 만으로 '교수'의 직함을 빼앗고, 아예 '계좌'도 정지시켜버리고,
이런 일련의 진행 과정에 대해 '공안 정부, 혹은 반민주주의가 아니냐?'라고 물으면 한결같이 '오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오해'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세 번, 네 번, 아니 매번 똑같이 '오해'들이 연달아서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매번 똑같이 '오해'라고 치부할 수 있는지 참 '담대'하거나, '비인간적인 철면피'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사지로 이끌었던 그 방식 그대로, 이제는 차기 대선 주자로 점춰지고 있는 한명숙 총리를 끌어들입니다.
이번에도 '증거' 같은 건 없습니다. 아니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거대 권력인 언론과 손발만 잘 맞추면 되는 겁니다.

뉴스를 보시던 어머님께서 한명숙 총리가 뉴스에 계속 언급되자, '저게 무슨 일인지' 저에게 물으십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어머님에게 답해드렸더니, 어머님도 무슨 상황인지 아시는 것 같습니다.

벗님에게 있어서 '어머님과의 대화'는 무척 소중한 시간입니다. 행여 내 스스로 판단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혹은 연륜이 짧아서 더 넓게 바라보지 못하고, 눈 앞의 현실에만 시선을 묶어두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머님께서는 이 '몰인정한 정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지난 해, 저녁마다 촛불이 일어나 어둠이 밝히며 몸부림치던 그 시절. 어머님은 이런 사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몽둥이와 방패에 맞고 찍혀 도로 바닥에, 인도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려질 때에도
방송국에서는 희희낙락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들을 금과옥조처럼 '정규 방송' 그대로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어떤 그룹 회장이 아들의 분풀이를 해준다며 폭행을 행사해서, 그 구속 여부의 결정문이 발표될 때는 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특보'를 제작했지만, 전의경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시민들은 아무런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눈을 감아야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웃고 즐기는게' 그토록 우리 국민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이것이 시작임을 직감했습니다. 우연스럽게 웹서핑을 하다가 MBC 뉴스 기사 하단에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경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있다, 피를 흘리며 쓰려졌다. 방송에 내보내라. 말도 안되는 이런 폭력들을 막아달라.'

하지만, 이런 극박한 타전들은 어느 방송국에서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방송국에 전화도 하고, 요청도 했겠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광주민주항쟁, 어느 지역에서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1980년의 광주, 언뜻 머릿 속을 스쳤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위 문화는 그리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손을 잡고 나오는 촛불 같은 경우에는 지극히 평화롭습니다.
자동차를 불태우거나, 주변 상가에 불을 지르거나 하는 그런 '지독한 시위'가 아닙니다. 그저 촛불과 구호와 노래가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폭력 시위대'를 진압하듯 폭력을 남용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을 때리고 짓밟습니다.

마치 불편한 일을 손쉽게 해결해 줄 '조직폭력배'를 '국가'에서 부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건 정말 겁납니다.
'조직폭력배'에서 폭행을 당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 '국가'는 '불법'이라는 주홍글씨는 낙인을 찍고, '조직폭력배'는 포상합니다.
십 수 년 전에 방영했던 '모래시계'가 떠오릅니다. 권력과 폭력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할 수 있는 그 '상상이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촛불을 모두 끄고, 초와 종이컵까지 모두 빼앗아버리고는 이제 '일사분란'하게 '하고자 하던 바'를 하기 시작합니다.

촛불을 들게 되었던 가장 큰 문제였던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 '안전한 먹거리 시장' 대신 '불신'이 자리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캐나다 쇠고기도 수입하는게 방침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사실상 '국민의 건강권'같은 건 고려 사항이 아니겠지요.

'순한 양'으로 살고 싶습니다. 무던하고 바보 같은 그런 '순한 양'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순한 양으로 살아가는 건, 평화로운 풀밭에서나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평화로움이 가득한 풀밭'으로 보이는 안대를 쓰고, 절대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저는 '순한 양'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양이었는지 늑대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순한 양'이 될 것입니다.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쇼펜하우어, 그의 자신만만함이 궁금하다.

얼마 전부터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라는 서적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의 서문에는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여러 글들을 접하며 '저런 고집스럽고, 어찌보면 오만하게 보이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저런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굳건한 철학과 관념, 생각들은 정말
독보적이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별나게 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교양이나 격식이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방어막조차도
그의 눈에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허래허식'일 뿐이라며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는 만큼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 뿐이다'라는 정의에서는 한 없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자신 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부족한 부분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하라는 건 무정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매섭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쇼펜하우어의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에 대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점점 궁금증이 많아지는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이번 기회에 조금 더 그의 내면을 바라보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책을 완독하지 못한 터라, 뒷 이야기는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6점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시아출판사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국익,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국익이고 무엇이 바른 길인가.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이 문제를 접하고 나면 한 참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라에 이로운 것, 나에게 이로운 것. 너희가 좋은 것, 내가 좋은 것. 무엇을 중심을 맞춰야할지 내내 고민이 됩니다.

내가 좋은 것이 너에게 좋은 것이고, 너에게 좋은 것이 또한 내게 좋은 것이라면 그것이 '국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국가'라는 두리뭉실한 개념이 아니라, '너와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또 살아갈 국가'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국익'이 되어야할 것 입니다.

이 '국익'이라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질 않아도 바른 길을 향해 잘 나아간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겠으나,
길을 이끄는 어떤 이들로 인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이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 만은 없게 됩니다.
분명 저 바르지 않은 길로 나아간다면,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힘겨운 시련을 겪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때도 있다'라는 말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돕니다.

'바른 길'을 말하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며, 또한 엄청난 고난의 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른 길이기 때문에, 바른 길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한 분들이 계십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먹칠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파옵니다.

방송과 언론에서 이 분들의 깊은 고민과 함께 힘겹게 시작한 이 '바른 길 찾기'에 대해 바르게 조명을 해줄까요.
아니면, '국익'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어떤 계층 집단의 사익'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비난과 힐란을 해댈까요.

벗님은 마음으로나마 이분들의 '바른 길 찾기'에 동참합니다.
더불어, 몇 개월 전에 구입한 노트북도 A/S가 상대적으로 더 좋았을 '삼성'보다 'HP'를 선택했습니다.
아주 작은 실천일지 모르지만,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바른 길'을 향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원합니다.




메주는 콩으로 쑤어야 합니다
   
언소주가 조중동 심판을 부르짖은 지 1년 6개월, 삼성 불매를 선포한 지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회원들의 뜻을 묻고자 합니다.
삼성불매를 외국으로 확대시키는 것과 삼성불매 광고를 외국 유수 일간지에 게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삼성불매운동을 해외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삼성불매와 관련된 글을 우리 회원들의 도움을 통하여 여러 나라 글로 번역을 할 것입니다.
번역된 글은 여러 나라 유명 사이트에 올릴 것입니다. 해외에 계신 언소주 회원님과 촛불들도 활동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각자 계신 곳에서 삼성불매 1인 시위를 하고 그 나라 사이트에 삼성불매와 관련된 글을 퍼 나르실 것입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단체들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해외 단체들도 삼성불매에 동참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 언론(Time, Financial 등)에 삼성불매 광고를 실으려고 합니다.
삼성매출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해외비중이 크기 때문에 삼성불매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따라서 해외언론에 삼성불매광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해외언론의 광고에 소요되는 비용은 언소주뿐 아니라 아고라 등에서 모금을 통해 집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조중동과 삼성은 시끄럽게 떠들 것입니다.
우선, 수출을 막아서 우리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도한 광고비를 해외에 지출한다고 할 것입니다(아시아, 유럽, 미주 등 일부지역에 국한하는 경우부터
전 세계에 광고하는 경우 그리고 광고하는 위치와 크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1회에 대략 3천만원에서 2억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외국 시민 단체와 연대, 삼성이 대한민국에 저지르는 거대한 패악과 경언유착의 실태를 만방에 알리고
조중동 최대 광고주로서의 위치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고자 합니다.
 
언소주는 그간 조중동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왜곡 편파 보도를 일삼는 조중동의 배를 불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지난 쇠고기 파동 때부터 조중동의 왜곡 보도는 그 정도를 넘어서 숫제 국민들을 협박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피력할 시에는 그게 누구라도 사회전복을 꾀하는 불순분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과시한 바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며,
뜻있는 시민단체를 자금사용 용처 ‘의혹’으로 동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검찰과 협력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인사들의 ‘의혹’을 자체 생산해 내며
‘성공하면 공격 대상을 사회적, 물리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안 되도 그만’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조중동과 검찰, 재벌, 위정자들이 조국의 미래와 자신의 영혼을 팔아가면서까지 숭배하여 마지않는 ‘돈’으로 국민들을 압박하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의로운 자들을 궁지에 모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 추악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돈으로 압박하고 돈으로 더럽히고 돈으로 생계를 위협하고 돈으로 모욕합니다.
뇌물 수수 혐의를 조작해 내고 악의적으로 소송을 남발하고 억지스레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고 명예훼손 운운하며 옭아맵니다.
 
덧붙여 그 고삐를 있는 힘껏 틀어쥐고 폭주를 막고자 해도 비윤리적이고 광포한 자본의 횡포를 막을 수 없을진대
말의 고삐를 풀어주고 폭주를 독려하며 길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조중동과 정부의 논리는 기가 차고 숨이 막힙니다.
성난 말의 폭주를 돕고자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도로건설비를 차출합니다.
게다가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정치후원금’을 내라고 홍보하기까지 하는 후안무치의 끝을 보여주더군요.
우리 국민들이 언제까지 ‘평화의 댐 건설 성금 모금’과 ‘금 모으기 운동’에 동원되어야 하는 것인지 정치인들의 저질 코미디는
종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숫제 자신들의 나팔수들로 방송사를 차려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겠다니 그 시커먼 속내를 어찌 모른 척 해야 할지 고통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할 것은 조중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불매운동으로 삼성이 망하려면
수백 년쯤 후의 일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추진하는 것은 이성을 잃은 말의 고삐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대한민국이 몇몇 모리배들의 편의를 위해 편성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안간힘입니다.
 
언소주는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왜곡, 허위 보도하는 언론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용이하도록 방송을 쥐여주고
‘경쟁력 강화’니 ‘일자리 창출’ 운운하며 거대 자본을 가진 재벌들에게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도록 모사하는
정부와 검찰, 저질 언론과, 비윤리적인 기업들을 통틀어 불매하고자 합니다.
국민들의 단호한 뜻을 보여주고 저들의 횡포에 제동을 걸어 주십시오.
저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것, 최소한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국민 여러분과 회원 여러분들이 아래의 것들을 함께 고민해 주십시오.
 
*삼성불매를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애국적이지 못한 행위입니까?
 
*삼성이 대한민국에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해 내므로 국민들이 삼성제국의 압제 하에 숨죽이고 있는 것이 마땅합니까?
 
*삼성의 이익이 정녕 대한민국의 이익입니까?
 
*혹 삼성의 이익이 삼성 일가의 이익은 아닙니까?
 
*삼성의 이익이 곧 대한민국의 이익이라는 가정 하에 대한민국에 물질적인 이익을 제공해 줌으로써
삼성의 불법, 탈법, 위법적인 파행과 대한민국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아름다운 사회 통념을 흐리게 하는 것을 묵인해야 합니까?
 
*삼성 및 재벌에게 ‘국민’이라는 제동장치를 거는 것이 저들의 기업 활동을 망하게 하는 일이겠습니까?
 
*정계와 관계, 검찰과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돈을 살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연못을 썩게 하지 않고는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까?
 
*비윤리적이고 탈법적인 행위와 무관하게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입니까?
 
*삼성을 묵인하는 것과 삼성이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 편성하려는 의도를 저지하는 것 중 무엇이 진정한 애국입니까?
 
*삼성이 아니면 대한민국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까?
 
*삼성 없이는 대한민국도 무력할 뿐입니까?
 
*하여, 삼성이 대한민국 수뇌부를 전방위에서 손아귀에 넣고 쥐고 흔드는 일을 우리가 묵인하는 것이 옳습니까?
 
*삼성과 조중동 중 과연 누가 더 거대한 사회악이겠습니까?
 
*모두가 뜻을 모아도 삼성의 털끝 하나 건드릴 힘이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까?
 
*몇몇 뜻 있는 인사들이 죽을 용을 써도 그들 개인의 삶만 망가질 뿐 삼성을 감히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의 불매운동이 과연 저들에게 일말의 경각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보십니까?
 
*정녕 조중동을 심판하고 삼성을 불매하는 일을 몇몇 의로운 자들의 고단한 싸움으로 방치하시렵니까?
 
*대한민국이 결정적으로 썩은 연못이 되지 않도록 발버둥을 치는 시민단체 인사들과 온몸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지사들이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누군가 제 한 몸을 송두리째 투신하고 삶이 짓이겨져도 해 낼 수 없는 일을
국민 일반이 작은 힘을 나누어 쉽게 이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 사회가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하고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일까요?
 
*과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대한민국을 망치는 조중동을 제지하고 비윤리적인 재벌의 폭주를 막는 데
동참하실 의사가 없는 것입니까?
 
 
국민 여러분!
 
메주는 콩으로 쑤어야 합니다.
팥으로 메주를 쑤는 짓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먹어보니 콩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대국민 홍보를 하거나,
왜곡 보수 언론들이 ‘팥으로 메주를 쑬 수 없다는 빨갱이들의 괴담에 선동되지 말라’는 허튼 소리를 지껄인다 해도
팥으로 메주를 쑬 수는 없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며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우겨서도 안 됩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메주는 콩으로 쑤어야 합니다.
 
기업들이 ‘광고 효과가 좋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말아 먹으려는 왜곡, 허위보도를 하는 언론에 자금을 대고 있는 것에
어떤 가책도, 책임도 느낄 수 없다’라고 하는 데에 일침을 가하고자 합니다.
열흘 정도 국민 여러분의 생각을 수렴코자 합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에 여러분들의 뜻을 전하여 주십시오.

관련 글 :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자축, 금연 600일

금연을 시작한지 600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실 담배를 피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애연가에게는 미안한 소리겠지만, 담배냄새가 싫고 되도록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한답니다.
쉽사리 끊기 힘들다는 담배라는 고정관념은 사실 마음 한 번 바꾸는 것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담배를 전혀 몰랐던 그 시절에도 잘 살아왔던 것처럼, 예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뿐이니 말입니다.

금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이렇게 기념 포스팅을 올리는 것은 하나는 자기만족이며,
또 하나는 여전히 여러분에게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때문인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약속은 여전히 힘에 붙이니, 여러분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하고자하는 마음이겠지요.  

* 이 포스트의 초안은 아이폰으로 작성하여 올립니다. 예전 PDA에서 작성하던 것에 비하면 무척 윤택한 환경이네요.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자축, 벗님 금연 500일 (http://daeil.textcube.com/1464 )
- 경축, 벗님 금연 1년! ( http://daeil.textcube.com/1181 )
- 자축, 금연 6개월(180일) ( http://daeil.textcube.com/883 )
- 20일 동안 피울 담배의 타르덩어리 ( http://daeil.textcube.com/815 )
- 금연 100일을 자축합니다. ( http://daeil.textcube.com/785 )
- 금연 일주일 - 달라진 기상시간 ( http://daeil.textcube.com/690 )
- 금연 이틀 - 졸음과의 싸움 ( http://daeil.textcube.com/688 )
- 책12권 - 흡연 한 달 비용 ( http://daeil.textcube.com/687 )
- 오랜 친구, 담배를 떨쳐버립니다. ( http://daeil.textcube.com/686 )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아이폰, 만져보기

언제가될까 싶었는데 어느 틈에 벗님의 손에도 아이폰이 들려있게 되었습니다.


아이폰이라는 신묘한 디바이스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에서 본 순간부터 2년 정도를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숱하게 많은 신제품 핸드폰으로 기변을 저렴하게 할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며 오랜동안 기다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애플'은 철저하게 완성도가 높은 제품만을 출시한다는 믿음이 근반이 되었습니다.

일정수준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해고'를 당할 만큼 '애플'의 '작품'을 만든다는 인식은 한결같습니다.
예술가, 이런 중심에는 역시 스티브 잡스가 있습니다.
기술력이 되지 않던 시절, 컴퓨터 본체에서 시끄럽게 소음을 만들어내다며 팬을 빼버리라는 주문을 할 만큼
그에게 애플의 생산품은 '상품'보다는 '작품'이 되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애플의 완벽을 추구하는 이념'은 아이폰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조금 만져보다가 위 아래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사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유일하게 커넥터 연결 부분 옆에 작은 나사 두 개가 유일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냥 둘러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완성품'이라는 단어는 이런 걸 두고 부르는 단어일 것입니다.

이런 전자제품을 구입하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먼지 하나 없을 때 '깨끗한 액정'에 투명한 필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조심조심스럽게 필름을 붙여서 행서 발생할지 모르는 스크래치를 막아야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벗님도 이 필름과 케이스를 선택하기 위해 이리 저리 찾아보다가 아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머니에 넣어다닌다는 가정하에 아이폰을 열쇠와 함께 넣고 흔드는가 싶더니, 그래도 멀쩡하자 조금 더 심하게비비고,
그래도 멀쩡하자 아예 열쇠를 들고 아이폰의 멀티 터치 스크린을 긁어버립니다. 그래도 멀쩡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각 '으악'하는 소리가 정말 터져나오려 합니다. 아이폰의 강화 유리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되고 맙니다.
그리곤, 시리얼이 담긴 우유 속에 툭 떨어뜨리기도 하고, 아예 가볍게 물과 비누로 씻어버리기도 합니다.

뒤이어 외부에서 떨어뜨리는 실험들을 하며 '어떻게 해야 망가질 수 있는가'라는 극한까지 실험을 합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아닌 실내에서 실험한 영상도 보았는데,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필름을 붙일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그래도 역시 충격을 완화시키는 실리콘 케이스 혹은 보조 밧데리가 포함된 케이스를 생각중입니다.

조금 더 사용해본 후, 그 뒷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iPhone, 궁극의 터치감 ( http://daeil.textcube.com/1528 )
- 스트리트 파이터2와 아이폰의 비슷하고 다른 이야기 ( http://daeil.textcube.com/1498 )
- Layar, 한층 미래화된 모바일 서비스 ( http://daeil.textcube.com/1323 )
- iPhone을 좋아하는 이유 ( http://daeil.textcube.com/836 )
- 기술은 사람들은 변화시킨다. ( http://daeil.textcube.com/562 )
- 아이팟 터치가 끌리지 않나요? ( http://daeil.textcube.com/422 )
- iPhone 발표 - OS X를 기다리며 ( http://daeil.textcube.com/64 )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희곡을 써보고 싶어지네요.

며칠 후에 '에쿠우스' 연극을 볼 예정인데, 같이 연극을 볼 지인으로부터 '에쿠우스 희곡'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극을 보는 것과 미리 관련 정보들을 보고난 후에 공연을 보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에쿠우스 희곡'을 읽으며 나름의 극의 진행을 머릿 속으로 떠올려보고 있습니다.
연극적인 발성, 조금 과장된 표현과 능수능란하게 관객을 사라잡을 그들의 열정이 벌써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희곡을 읽어보다보니, '글쓰기'라는 나름의 고정관념이 조금씩 더욱 '접근하기 쉬운 방향'으로 전환를 꾀하게 됩니다.
그 동안, 글이라는 건 '기승전결의 틀 안에서 깔끔하게 구성되고, 적절한 단어들로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되어야한다'라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희곡'을 읽어보고 있으니, '표현의 방식'이라는게 꼭 그렇게 갖춰져야만 하는
'필수조건'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전달과 공감, 생각꺼리를 전달해주는 것이라면
굳이 '어떤 틀 안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생각보다 편한 날개를 단게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어떤 '표현의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것'이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문득 '희곡'을 시험삼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잠시 흉내를 내봤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참 쉽고, 글이 편하게 진행되더군요.

그 동안 하나의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고, 적당하고, 적확한 단어를 떠올리는데 한 참은 고민했었는데,
이 '희곡'을 작성할 떄에는 그런 고민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보다 사건의 진행과 주고받을 대화와 독백.
이런 부분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점점 내용을 진행하는게 빨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이동합니다. '멋진 희곡' 하나 만들어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자화자찬이겠지만 말이죠.

심심풀이로 끄적였던 '희곡 흉내내기'를 올려봅니다. 이건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장난스럽게 별다른 의미없이 쓴 글입니다.

----------------------------------------------------------------------------------------------------
# 도로 변

12월 4일, 눈이 내린 다음 날. 인도 변에는 흰 눈이 아직 엷게 남아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로지를 때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온다.
  분노로 일그러진 남자는 구겨진 종이를 오른손으로 움켜쥐고 있다. 계속 주먹이 흔들린다.
  눈물을 감추기 힘겨운지, 고개를 떨구고 헉헉 숨을 내뱉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분노를 삼키고 있다.)

행인1: (술을 거하게 마신 행인이 갈지자로 걷다가 남자를 바라본다. 몸을 주체하기도 힘들다.)
         어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힘겹게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이봐. 안 추워?
         (흔들거리더니,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다시 남자를 바라본다.) 안 춥냐고? 추운데..

남자: (무심하게 행인1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군다. 조금 전보다는 숨이 고르게 변했다.)

행인1: (인상을 찌뿌리며 남자에게 촛점을 맞춘다. 잘 되지 않는지 몇 번 정도 반복한다.)
         겨울이야.. 겨울. (인상을 찌뿌리며 다시 남자에게 촛점을 맞춘다.) 얼어죽어요!
         (해맑게 미소지으며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미소를 짓는다.)

남자: 괜찮아요.. 아저.. (남자는 깊게 숨을 들이킨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숙인다.)

행인1: (하늘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시 비틀거린다. 허리춤에 손을 집어넣다가 넘어지고 만다.)
         아이쿠야.. 아.. 뭐야.. 이게.. (침을 퉤 하고 옆에 뱉더니, 입술을 쓱 문지른다.)

남자: (물끄러미 행인1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일어선다. 두 걸음을 옮기다가 행인1에게 말한다.)
         들어가세요, 아저씨. 춥네요.

행인1: (힘겹게 눈을 띄는지 껌벅거리다가, 손 인사를 건낸다.) 거봐.. 춥댔잖아.

남자: (가로지르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두어 번 시선을 맞추는가 싶더니, 도로로 몸을 던진다.
         귓청을 찢는 타이어 마찰음이 들린다. 남자의 한 마디 신음도 들리지 않는다.

행인1: (그 소리에 놀란 행인1은 번쩍 눈을 떴다가 다시 스르륵 감는다.) 젊은이.. 추워..

----------------------------------------------------------------------------------------------------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너무 즐거워 할 크리스마스카드 만들기

받는 사람이 너무 즐거워 할 크리스마스 카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에는 이 크리스마스 카드의 모습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며 받은 이의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글 :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신과 나눈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신과 나눈 이야기'는 첫번 째 책이 나올 당시부터 '3부작'이 될 것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첫번 째 책이 '신과 나'라는 일인칭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면, 두번 째 책은 '신과 나와 우리'라는 범위로 넓어졌고,
세번 째 책에 이르러서는 '신과 나와 우리, 그리고 또 다른 나'까지로 그 범위가 무한하게 넓어졌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신, 신적 존재'와의 대화에 대해 벗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포스트에서 '신'이라는 표현은 '저자의 표현'을 그래도 따랐음을 의미합니다. 글 말미에서 이 '신'에 대해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저자의 경험과 사실이 이 책의 근반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할지, 인정하지 않을지에 대한 판단은
당연히 독자의 몫이며, 독자의 선택이기에 벗님은 '신, 신적 존재와의 대화가 아니었다'라고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전재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두께의 이 세 권의 서적을 탐독했던 이유는 '순수하게 책에 담긴 내용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수 많은 질문들을 '신'에게 건내고, '신'은 이 이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혹은 한 동안 생각해보아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로 답을 해줍니다.

저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몇 번이나 다시 물으며 이해가 갈 때까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또 어디로 향하는지 예측할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중구난방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신'은 한결같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 모두 답해주겠노라며 '질문하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저 다양한 주제의 질문들에 대해, 현명하고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 '신'의 답변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관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신'은 아무 것도 하질 않는다는 점입니다. ''은 언제나 그저 팔짱을 끼고 '관찰만' 하고 있을 뿐, 무엇도 하질 않습니다.
종교 단체에서 이야기하는 '엄격한 신, 벌주는 신'과 같은 모습은 이 서적의 어디어서도, 어떤 답변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질 않는다'라고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은 만큼, 인간 생활에 대해 무엇도 '간섭'하질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되고'와 같은 계율이나 율법 같은 것을 '신'은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단지 이런 '무서운 신'과 같은 모습들은 종교 단체에서 사익을 위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신'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단체의 폐해라고 볼 수 있는 '부와 권력'에서 자유로운(사실상 전혀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부분에서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뭔가 불편하다'라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왜 불편한 것인지'를 사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이성적이라는 테두리로 인해 '자연스러움'이 점차적으로 '배제되어버린 현실과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이 서적을 통해 '사실 그대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제한'들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은 자신은 그저 '관찰'만을 한다고 말합니다. 보통 '관찰'이라는 행위를 떠올려보면, '관찰'이 '관찰'로만 끝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관찰 이후'에 무언가를 판단하며, 좋고 싫음, 옳음과 그릇됨을 구분하고, 또 뒷따르는 행위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좋음과 싫음도 없으며, 옳음과 그릇됨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어떤 환경에서 일어난 일인가에 따라서' 그 판단이 다르게 변해버리는 것은 아무런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현 시대의 관습과 가치관, 전통과 정의, 진리 같은 것들이 불과 수 백 년, 수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완전히 다르게 판단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기준'들이 정작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먼 것이라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은 충분히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이 포스트 하나에 '신과 나눈 이야기'에서 거론되는 모든 이야기를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분량도 상당하고, 이야기의 주제도 다양합니다.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삶과 죽음, 생명, 외계생명체, 사랑과 두려움, 종교와 사회 등 그 하나 하나가 책 한 권씩은 될 것입니다.

벗님이 생각하고 있는 '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벗님은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형상과 비슷한 '신'이라거나, 인간 위에 존재하는 어떤 '신'이라는 형태의 '믿음'으로 간주해야하는 존재로서의 '신'은 믿질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상의 창조(혹은 탄생)과 관련되어, 다양성이 혼재된 상태의 생명체의 창조, 자율의지를 갖은 존재들의 생노병사와 관련되어
이 '자연 조화, 혹은 우주 조화'와 같은 '현상들'에 대해 '신과 같은 느낌'을 전달 받습니다. 이는 '믿음'과는 현저히 다른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생명체의 근원, 신의 근원, 자연과 우주의 근원은 동일한 것'이며,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와 달이 말을 걸어오고, 별이 속삭여주고, 나무와 풀이, 시냇물이 실제로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처럼,
'신'이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경험을 이 책의 저자처럼 실제로 느꼈다고 한다면,
이는 '신과의 대화'가 아닌 '자신과의 대화'라고 보는 것이 보다 더욱 합당하게 생각됩니다. '자신의 내면과의 나눈 대화'라고 말입니다.


치열하게, 지독하게, 혹은 처절하게 어떤 대상과의 대화를 원하면, 그 대상이 '신'이라 하더라도 분명 응답을 받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신, 신적 존재, 창조주'와 같은 존재와의 교감은 아닐 것입니다. '내면과의 대화'가 열린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를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열반, 꺠달음, 각성'과 같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로 놀라운 경험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 속에 감추어진, 혹은 표면화되지 않는 이런 깊은 내면의 의식과 교감하는 통로가 갖게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저자가 적어놓은 '신의 대답들'은 랍비, 깨달음을 얻은 고승, 선지자와 같은 높고 깊은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범접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이 쉽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이런 점 때문입니다.


'신과의 대화'를 부정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세상만물'을 모두 창조했고 모두 알고 있다는 '존재'가 꺼내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이야기의 깊이와 폭은 깊고 넓기는 하지만, 그 한계가 분명하게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한계란 것은 바로 '저자'입니다.
저자가 알고 있는 사실과 경험, 저자가 깨우친 범주와 저자가 생각했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정의된 범주에 국한된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인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이 '신과의 대화'에서는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신과의 대화'가 아니라고 해서, 이 책이 전혀 '쓸모 없다'라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 앞에 누구도 앞세우지 말고, 언제나 '자신'이 중심이며 길이다.
-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당연한 것이다. 이것 외에는 의지할 필요는 없다.
-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마음'먹으면 현실이 된다.
- '느낌'이 곧 '현상의 본질'이며, '행동의 기준'은 그 '느낌'을 바탕으로 하자.
- '내 자신'이 나를 해하지 않 둣,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자.
- '사랑'하자. 내 자신을, 우리들을, 내 주위의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을.

신과 나눈 이야기 3 - 10점
닐 도날드 월쉬 지음, 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벗님의 관련 포스트 :
- 좋은 글, 신과 나눈 이야기 ( http://daeil.textcube.com/1529 )
- 신과 나눈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 http://daeil.textcube.com/1531 )
- 신과 나눈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 http://daeil.textcube.com/1533 )
- 신과 나눈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 http://daeil.textcube.com/1538 )